공유, 간단하지만 뜻 깊은 아이와의 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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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기분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그것은 하루 종일 눈 마주치며 아이를 케어할 수 있는 부모에게도, 일터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고작 몇 시간 아이와 함께하는 부모에게도 모두 마찬가지다. 


아이와 더 친해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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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광고에서 다음과 같은 카피를 봤을 때 왠지 모를 위안을 얻었다. 


‘세상에 나쁜 엄마는 없습니다. 바쁜 엄마만 있을 뿐입니다.’


이 기사는 나쁜 엄마는 되기 싫은 바쁜 엄마의 ‘아이와 소통하는 방법의 공유’다.


왜 일하는 엄마는 ‘나쁜 엄마’가 되어야 할까


우리나라에서 아이를 키우는 대부분의 일하는 엄마들은 자신을 ‘나쁜’엄마라고 생각한다. 


아이에게 좀 더 윤택한 미래를 안겨주기 위해 일을 하는데, 그 때문에 아이는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이 현저히 줄어든다. 


과연 이것이 내 아이를 위한 일이 맞는 것인지 일하는 엄마들은 계속해서 고민하고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내탓이오를 반복하며 자책한다.
 

이는 필자도 마찬가지다. 잡지사의 일은 ‘마감’이 정해져있고, 이 마감이라는 것이 늘 뜻대로 되지는 않기에 마감기간에는 하루에 한 시간 아이와 눈 마주치기도 힘든 날이 많다. 


엄마가 필요한 아이를 할머니에게 맡겨 놓고 하루 종일 바깥일이라니. 스스로가 나쁜 엄마인 것만 같아 늘상 마음이 불편하다.
 


함께하는 시간이 부족한 우리, 그렇다면?


일을 한다는 명목아래,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현저히 부족한 스스로를 ‘나쁜 엄마’라고 생각했던 것도 잠시, 이대로 나쁜 엄마로 머무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한 건 스스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인데, 이대로 나쁜 엄마 취급 받기에는 너무나도 억울했던 것.
 

이런 생각을 했던 시기에 퇴근 후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것은 아이의 자는 얼굴과 유치원에서 그려온 그림 쪽지였다. 


손바닥만한 크기의 종이에 그려져 있는 사람. 얼굴은 있는데 몸은 없고 다리는 있는데 손 대신 날개가 있는 요상하게 생긴 사람. 이 사람의 모습이 괴상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때론 사랑스러워서 한참을 쳐다봤었다. 


이 사람이 ‘엄마’였던 것을 안 것은 꽤 훗날의 일이다. 마감이 끝나고 비교적 시간적 여유가 충분했던 어느 날, 그림에 대해 아이에게 물어보자 아이는 장황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그림에 대해 물어봤을 뿐인데, 이야기는 그날 아이가 무엇을 했는지, 어떤 기분이었는지, 색깔을 쓰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등등 끊임없이 확장됐다. 


마치 내가 모르던 아이의 하루를 들여다 보는 기분이었다. 매일 읽어주던 동화책처럼 그렇게 아이는 나에게 그림을 읽어주고 있었다.
 

“너무 재밌다. 그럼 엄마도 그림 그려줄까?” 


그렇게 우리의 그림교환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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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생각하는 낙서
 

필자는 그림은 젬병이다. 어릴 때 유치원 대신 미술학원을 졸업했지만 그림에는 영 소질이 없다. 


고등학교 때 미술시간에 10점 만점에 1점을 받았을 정도로 그림 실력이 형편없다. 


하지만 이런 필자도 아이 앞에서는 자신 있게 그림을 그려댔다.
 

그도 그럴 것이 말문이 트일 무렵부터 코끼리, 기린, 원숭이부터 시작해 뽀로로에 이르기까지 아이가 그려달라고 하는 것은 무궁무진했다. 


물론, 잘 그릴 필요가 없어 더욱 자신 있게 그려댔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낙서’에 불과했던 그림은 지금에 와 생각해보면 아이와의 소통이었다.
 

아이가 그림을 읽어준 그 날 이후로, 필자는 틈틈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하루의 일과를 그리기도 하고, 자화상을 그리기도 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그리기도 했지만 역시 가장 많이 그린 것은 아이의 얼굴이었다. 하루 종일 가장 많이 생각하는 얼굴이라서 일 것이다.
 

아이도 나에게 매일 그림을 전해준다. 물론, 유치원에서 그리는 종이 조각의 낙서이지만 여전히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무슨 그림이야? 라고 물어보면 최소 20분은 들어야 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아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노라면, 그림이라는 매개가 주는 유대감이라는 것이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이렇게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가 생기고, 서로의 시간이 생기는 것이니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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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는 또 다른 이름의 소통


우리의 소통은 ‘그림’이라는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것이 ‘편지’가 될 수도, ‘사진’이 될 수도 있다. 


형태는 무궁무진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를 매개로 아이와 ‘소통’한다는 것.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사랑을 보여주는 것에는 어느 정도 ‘보이는 것의 힘’이 필요하다. 


아이를 생각하며 그린 그림, 써 내려간 편지, 카메라에 담은 사진. 그 자체로도 가치가 있지만 그로 인해 함께하게 되는 아이와의 시간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
 


평소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나 대화가 많은 부모라면 이 같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부모에게는 이 역시 스스로 만드는 아이와의 공감 준비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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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그린 그림이지만 아이는 필자의 그림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필자도 마찬가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림이지만 아이가 그린 그림을 보고 그 속에 숨어있는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너무나도 행복하다. 


훗날 아이가 글을 잘 쓸 수 있게 되고 자기 표현을 더욱 확실히 하게 되면 ‘그림’이라는 형태는 또 다른 매개로 변할테지만 중요한 것은 아이와 공유하는 이야기가 많아지고 그로 인해 아이와의 소통의 시간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정서적 유대감이 깊어질수록 아이의 자존감은 높아지고 심리적 스트레스 또한 줄어든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아이들이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갖기 위해서는 부모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전적으로 믿어주고, 사랑해주는 부모가 든든히 뒤를 받쳐주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 아이는 당당하게 앞으로 걸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여성 한 명이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다른 여성 한 명의 희생이 있어야 하는 곳이다. 그렇기에 아이에게, 아이를 돌보는 이에게 나쁜 엄마라고 자책하는 일하는 엄마들. 


그러나 자책하지 말자. 세상에 나쁜 엄마는 없고, 바쁜 엄마만 있을 뿐이고 그 바쁨은 내 아이를 위한 것이니. 스스로 숭고해지자. 그리고 마음껏 사랑해주자. 내 아이, 가족,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사랑하는 내 자신을.
 


 Editor 박정미